문화재로 보존돼야 할 원전 건축물

김차웅 글

장수수 승인 2024.12.14 20:55 의견 0

문화재로 보존돼야할 원전 건축물

전 세계가 다시 원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원전의 안전성은 많은 경험으로 기술적 축척이 됐고 전력의 수요가 커지면서 재조명되고 있다는 게 이를 말해준다. 우리나라의 원전은 현재 어느 위치에 있을까. 얼마 전만해도 우리나라가 명실공이 원전산업의 최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전 정권의 근시안적인 탈 원전정책으로 인해 제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다가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친화적인 원전정책에 힘입어 재도약을 할 수 있게 됐다. 원전을 수출했던 국가로서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에너지 정책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원전. 우리나라는 원전이 가동된 지도 어언 반세기에 가까워졌고 이제는 용도 폐기되는 원전까지 생기게 됐다. 그게 바로 고리1호기이다. 이 원전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에 의해 국내 최초로 세워졌다. 당시만 해도 짓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논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지만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선 원전건립이 정부 시책의 최우선이고 보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자체가 상식적으로 통할 수가 없었다.

원전은 해체하는 것이 짓는 것보다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원전의 해체 수순을 밟으면서 대두된 화두지만 고리1호기의 건축물은 꼭 해체돼야만 하는가. 우리나라는 원전을 유치한 1970년대 후반서부터 원전의 혜택을 톡톡히 받아왔다. 이쯤대면 경제발전의 상징인 고리1호기만큼은 정신적인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고리1호기가 있는 지역은 필자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원전이 들어설 때만 해도 고리는 황금어장으로 소문이 났다. 그렇지만 원전 건립이 중차대한 국가시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내줘야만 했다. 물론 실향의 아픔에다 미흡한 보상에 대한 불만족 등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고리1호기가 기폭제가 돼 원전의 증설과 함께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때론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고리1호기의 완전해체를 반대할까. 내가 살았던 지역의 산물이라 하여 그러는 게 아니다. 뉴스에서 보듯 고리1호기를 해체, 원상복구를 하기까지는 약 15년이 걸리며 조 단위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리1호기를 굳이 해체할 필요가 있을까. 만약 해체가 실행될 경우를 가정해본다. 후손들이 역사적인 학습 자료로 삼기위해 고리1호기에 대한 모형 확보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리1호기의 건축물은 문화적인 측면도 있을 것임으로 반드시 보존돼야만 한다.

우리나라 원전산업의 산실인 고리1호기의 역사적인 조명을 위해 연혁과 실태 등을 살펴본다. 고리1호기는 1971.11.15 착공됐고 1978.4.29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원전이 가동된 지 약 40년 만인 2017.6에 폐로가 결정됨으로써 상업운전이 영구 중단됐다. 되돌아보면 고리1호기는 그동안 수명연장을 두고 찬반에 휩싸이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원전의 설계수명은 60년이나 내용연수는 30년으로서 안전에 대한 심의 결과에 따라 10년이 연장됐을 뿐이다. 설계수명대로라면 20년을 더 연장할 수 있었으나 부실한 부품의 교체 등으로 인한 과제를 안고 있었고 지역민과 환경단체로부터 완강한 수명연장 반대 등의 저항에 부딪쳐야만 했다. 이런 물리적인 변수가 생기면서 해체의 기간이 앞당겨졌다. 이게 당면한 고리1호기의 역사성이다.

그런 만큼 고리1호기의 건축물만은 국보급의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거나 등록문화재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방사선 물질의 온상인 원전의 시설물을 문화재로 할 수 있느냐며 의아해할 수도 있고 원전 관계자들 역시 현재 원전해체연구소까지 발족돼 고리1호기의 시설물 일체를 완전 해체하고 부지를 복원한다는 계획이어서 문화재의 필요성과 지정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전의 안전성을 저해하는 요인만 제거하면 얼마든지 문화재가 될 수 있고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어 이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가 요구된다. 문화재 지정은 그 대상이 얼마만큼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있느냐에 달렸음으로 설사 용도가 원전이었다 해도 차별을 둘 이유는 없다. 고리1호기는 근대 산업화의 모델이며 우리나라의 원전 건축물로선 최초라는데 뜻이 있다. 돔식의 건축물은 미관상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미적 감각을 살릴 수 있고 보면 조형물로도 손색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설물의 안전조치를 취한 다음 문화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아볼 필요는 있다.

고리1호기의 건축물은 튼튼하게 지어졌으며 내구성이 우수하다고 한다. 따라서 완전해체보다 보존 쪽이 돼야하며 그러기 위해선 리모델링을 하는 등 노후화와 진부화를 막는 일이 중요하다. 아무리 용도가 원전이라 해도 건축물은 해체가 능사는 아니다. 고리1호기는 방사능 유출이 없을 경우, 일반 건축물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견학을 하거나 일반인의 볼거리로 활용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가동 중인 원전을 찾아다니며 관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 건축물로서 문화재가 된 사례를 살펴본다.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는 사적가치가 큰 숭례문, 근정전 등이 있다. 그리고 충남 옛 공주읍사무소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건축물로서 얼마 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일제강점기 도시의 도심구조와 형태를 알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았다는 게 이유였다. 원전 시설의 대표 격인 고리1호기. 경제적으로 가져다준 부의 고마움을 알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기렸으면 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문화재의 지정을 서슴없이 들먹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논리에 연연한 나머지 해체에만 급급한데서야 말이 되겠는가. 건축물의 해체로 인한 부지의 확보 등 경제적인 가치도 크지만 문화재로서 보존할 가치도 이에 못지않음을 알았으면 싶다.

* 김차웅 : 대한민국 국가원로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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